어은공소 전경.
병인박해를 피해 산중으로 피난, 교우촌을 이루다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을 잇는 해발 1,059m의 성수산(聖壽山) 북쪽 자락 끝에 있는 어은동(魚隱洞)마을은
1888년 공소가 설립된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충청도에서 전라도 산중으로 피난 내려온
교우들은 박해가 끝나면서 차츰 교우촌을 이뤄 살기 시작했고, 어은동 공소도 그렇게 시작됐다. 물고기가 숨은
형상이라고 해서 ‘어은동’이라고 불렀는데 물고기는 로마 교회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서로를 알아보던 암호이다.
마을 이름 자체가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숨어들어와 살았던 우리네 신앙 선조들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그래선지 이 마을 사람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다.
27곳의 공소가 설립될 정도로 진안지역의 신자가 늘어나자 1900년에 어은동에 신부가 상주하는 본당이 설립되었다.
1901년 옛 공소집을 수리・확장하여 너와지붕의 7칸 규모의 한옥성당을 완공하였고,
1904년 15칸의 한옥성당을 다시 신축하였으며, 1909년 3월 마침내 너와지붕 목조49평의 새 성당을 준공하였는데
현재의 공소건물이다.
성당이 완공되던 1909년에 당시 주임신부이던 김양홍 신부는 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위해 성당 사랑채에 영신학교를 세워 국어, 한문, 수신, 산수 등을 가르쳤으며
1911년에는 성당 앞 마당에 학교를 신축하기도 했다. 학교가 신축되던 1911년 어은동본당 관할 신자 수는
2,117명이었고, 어은동공소 신자만 520명이나 되는 등 어은동은 진안, 장수 지역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21년 어은동본당은 본당 자리를 진안군 마령면 연장리 한들에 있는 한들 공소로 넘겨주고 다시 공소로 편입된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어은동이 산속 깊은 골짜기에 있었다는 것도 작용했다. 이후 어은동공소는
1947년 다시 본당으로 승격했으나 6ㆍ25 전쟁이 나면서 1951년에 다시 폐쇄돼 한들 본당 공소가 됐다.
그러다가 본당이 1952년 진안읍으로 옮겨가면서 어은동공소는 진안본당에 편입돼 오늘에 이른다.
정면 모습. 정면(도리칸) 6칸, 측면(보칸) 4칸의 장방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소건물은 정면(도리칸) 6칸, 측면(보칸) 4칸의 장방형 평면인데 오른쪽 2칸의 일부를 제대로,
나머지는 제의방과 사제관 등으로 사용했다. 또 왼쪽 측면 좌우 1칸씩은 남녀가 따로 출입할 수 있도록 출입구로 사용하였다.
그래서 건물 내부평면은 ‘아(亞)’자 형식을 이루고 있고, 가운데 기둥 사이에 칸막이로 막아 좌우
남녀석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랑식 구조에 주랑의 가운데 남녀석 구분의 열주를 둠으로써
‘4랑식’ 이라는 특이한 내부공간을 구성한 것이다. 제대 뒤편에는 목조로 된 감실과 목재 촛대가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제대를 감실 바로 밑 벽에 바짝 붙여서 설치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八作) 지붕에 너와로 이었다. 너와는 기와용으로 사용하는 얇고 넓적한 점판암이었다.
교우들은 지붕으로 사용할 너와를 구하려 30리나 떨어진 백운면 백암리까지 가서 지게로 날라 왔다고 한다.
1967년 너와지붕을 가벼운 함석지붕으로 바꾸었다가 등록문화재로 등록된 후 다시 청석을 깔았다.
한국 교회건축 중에서 지붕을 천연 돌판으로 얹은 유일한 사례이다.
어은공소 내부 모습
박해시대 형성된 교우촌은 전통 마을과 달리 공소를 중심으로 신분계층이나 서열과 상관없이 불규칙하게 모여 있는
괴촌(塊村)으로 근대기에 형성된 특이한 촌락유형이다. 많은 교우촌이 원 모습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비교적 잘 남아있는
대표적 교우촌이 바로 어은동이다.
글: 김정신 | 단국대학교 교수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카톨릭 성당건축사],
[유럽 현대교회건축], [건축가 알빈신부]가 있다.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자료: 제공문화재청헤리티지채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