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타우로스(Kentauro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종족으로 머리와 팔 등의 상체는 사람과 같지만 허리 아래 하체는 말의 모습을 한 반인반마(半人半馬)의 형상을 한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의 유래는 기록마다 다소 엇갈린다. 먼저, 테살리아 라피타이(Lapithes) 종족의 왕인 익시온(Ixion)이 여신 헤라(Hera)에게 반하자 제우스가 천상의 구름으로 헤라와 똑같이 만든 환영(幻影)을 보내 그녀를 품게 했고, 이들 사이에서 켄타우로스가 태어났다는 설이다. 혹은 이렇게 태어난 켄타우로스가 페리온 산의 암말과 교미하여 낳은 새로운 종족이 켄타우로스 일족을 이루었다는 설도 있다.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
이들 켄타우로스는 산속 동굴에 살며 주로 숲에서 돌과 나뭇가지로 때려잡은 동물의 날고기를 먹고사는 미개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성질 또한 포악하고 호색적인 데다 술을 좋아해서 종종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를 따라다니기도 한다. 아마도 켄타우로스가 디오니소스의 대표적인 추종자 무리 가운데 하나인 염소의 다리와 꼬리, 갈라진 발굽을 지닌 반인반수(半人半獸) 사티로스(Satyros)와 혼동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신화에서 반인반수의 존재들이 대체로 그렇듯, 켄타우로스 역시 이성보다는 동물적 본성이 강조된 저급한 존재로 여겨졌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가 그린 [미네르바와 켄타우로스]를 보면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Minerva,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나)가 켄타우로스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문명을 상징하는 건물쪽으로 향하는 야만을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덩치로 알려진 켄타우로스보다 키가 더 큰 여신은 무표정하지만 단호하게 그를 제압하고 있다. 체념한 듯 처진 그의 입꼬리가 여신의 당당함과는 사뭇 대조적으로 느껴진다.
1 외젠 프로망탱, [켄타우로스], 1868년캔버스에 유채, 205x131cm, 아비뇽 프티팔레 미술관 소장
2 산드로 보티첼리, [미네르바와 켄타우로스], 1482년경~1483년경캔버스에 템페라, 148x207cm, 우피치미술관 소장
라피타이와 켄타우로스 종족 간의 싸움
켄타우로스에 관한 일화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이들 종족과 친척 관계인 라피타이 족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가 대대적인 싸움을 벌인 것이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ō)가 『변신이야기(Metamorphoses)』를 통해 자세히 전하고 있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라피타이의 왕 페이리토오스(Peirithous)가 자신의 결혼식에 켄타우로스 족을 초대했다. 그런데 잔치가 한창일 무렵, 술에 취한 켄타우로스 중 하나가 신부 히포다메이아(Hippodameia)를 욕보이려 했다. 이에 흥분한 다른 켄타우로스들도 제각기 하객으로 온 여인네들을 끌고 나가려 하자 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세바스티아노 리치, [켄타우로스와 라피타이의 싸움], 1715년경 캔버스에 유채, 70x63cm, 개인소장
켄타우로스들의 막장 소란에 가장 먼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이는 페이리토오스의 절친으로 초대된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Theseus)였다. 테세우스는 켄타우로스로부터 신부를 빼앗고는 술잔을 내리쳐 단숨에 그의 목숨을 끊어놓았다. 본격적인 싸움은 이제부터였다. 술잔과 술 항아리, 집어던질만한 것들은 모조리 날아다녔고, 켄타우로스들은 주위에 있던 나무를 뽑아 라피타이 인들을 향해 휘둘렀다. 화가들이 남긴 이 장면은 오비디우스가 그토록 생생하게 묘사한 장면들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미남 켄타우로스 킬라로스(Cyllarus)가 창에 맞아 죽자 그의 아내 힐로노메(Hylonome)가 그 창에 몸을 던져 자결했다고 하는데, 피에로 디 코시모(Piero di Cosimo)의 작품 가운데 이들의 슬픈 사랑이 그려져 있다.
피에로 디 코시모, [켄타우로스와 라피타이의 싸움], 1500년경~1515년경 목판에 유채, 260x71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
영웅들의 스승 케이론
이처럼 야만적이고 난폭하며 호색적인 것이 켄타우로스의 전형적인 특징이긴 하지만 예외도 있었다. 케이론(Cheiron)이라는 켄타우로스는 의술과 수렵, 음악, 예언술에 능통해 영웅들의 스승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킬레우스(Achilleus)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궁술과 수금 연주법 등을 가르치는가 하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sklepios)까지 제자로 두었으니, 가히 현자(賢者)라는 칭호가 어울릴 만했다.
그러나 죽은 자까지 소생시키는 그의 기막힌 의술은 저승의 신 하데스(Hades)의 분노를 샀고, 케이론은 하데스의 부탁으로 제우스가 쏜 독화살에 맞아 괴로워하다 신의 선처로 하늘에 올라 별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헤라클레스(Herakles)가 켄타우로스들과 싸우다 쏜 화살에 우연히 맞았다고도 하는데, 불사의 몸이었던 케이론은 고통에 시달리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에게 그 불멸성을 양도하고 죽었다고도 전한다
1 장 밥티스트 레뇨 남작, [켄타우로스 케이론에 의해 교육받는 아킬레우스], 18세기경캔버스에 유채, 261x215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2 봉 불로뉴, [켄타우로스와 싸우는 헤라클레스], 1677년캔버스에 유채, 152x186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헤라클레스의 아내를 납치한 네소스
헤라클레스가 케이론을 죽게 만든 그 싸움에서 살아남은 켄타우로스는 거의 없었다. 그 몇 안 되는 생존자 가운데 겁 많고 교활한 네소스(Nessus)가 있었다. 어느 날 헤라클레스가 아내 데이아네이라(Deianeira)를 데리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던 중 물살이 험한 강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네소스가 다가와 데이아네이라를 업어서 강을 건네주겠다고 제안했다. 헤라클레스는 네소스를 믿고 먼저 강을 건넜다. 그러나 네소스의 본심은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는 것이었고, 이에 놀란 데이아네이라가 소리치자 헤라클레스는 활을 쏘아 네소스의 등과 가슴을 뚫었다. 네소스는 자신의 몸에서 솟구쳐 나오는 독이 섞인 피를 천 조각에 묻혀 데이아네이라에게 건네주며 그것이 사랑의 묘약이라고 속이고는 숨을 거두었다.
1 귀도 레니, [켄타우로스족의 네소스에 의해 들어올려지는 데자니르], 17세기경캔버스에 유채, 239x193cm, 루브르 박물관 소장
2 세바스티아노 리치, [켄타우로스 네소스와 싸우는 헤라클레스], 1706년~1707년프레스코화, 팔라초 마루첼리-펜치 소장
훗날 헤라클레스는 그의 외도를 의심한 데이아네이라가 이 천 조각을 숨겨 넣은 옷을 입는 바람에 온몸에 독이 퍼져 고통스러워하다가 스스로 불길 속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제우스는 이 영웅을 천상으로 불러들여 빛나는 별이 되게 했다고 한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존재들은 그 신체적 특징 상 인간과 동물의 본성을 공유한다. 물론 동물의 길들여지지 않은 본성이 더 강조된 일화들이 주를 이루지만 케이론의 경우처럼 인간적인 이성과 지성이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일종의 중간적 존재인 셈이다. 따지고 보면 고대인들에게 이러한 존재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이성과 억제해야 할 본능 모두를 갖춘 부러운 대상이 아니었을까.
글: 이민수 | 미술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인간, 사회 그리고 미술의 상호 관계와
이 세가지가 조우하는 특정 순간을 탐구하는 데에서 미술사학의 무한한 매력을 느낀다. 보다 가까운 미술사,
소통하는 미술사에 대해 고민하며 집필 및 강의 활동을 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