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풍경은 평생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의 미술 작업을 함께해온 주된 소재이자 주제였다.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폭풍과 함께 거세게 몰아치는 바다를 묘사했다. 그가 바다 풍경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영국 해협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영국이 첨예한 대치 상황을 이루고 있을 때였다. 터너는 양국간에 벌어지는 치열한 바다 위 전투의
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시도들은 점차 바다 풍경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후기에 이르러서는 바다를
소재로 빛과 색채를 연구하기에 이른다. 영국의 위대한 풍경화가로 불리는 터너의 바다 풍경을 통해, 물과 대기, 빛을 표현하려 했던 터너의
화풍 변화, 그리고 대중적인 인기 속에서 발전해온 영국 바다 풍경화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대중적 인기를 구가한 영국 바다 풍경화
풍경화의 주된 소재 중에서 화가들에게 가장 사랑 받았던 장르 중 하나였던 바다 풍경화는 18~19세기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크게 유행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유럽의 그 어느 나라보다 바다를 주제로 한 풍경화가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화가들이 낭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대한 성찰적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봤다면, 대중들이 바다를 바라보는
시각은 조금 더 현실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터, 삶의 현장으로서 그곳을 바라보았고, 그랬기 때문에 그러한 자신들의 모습을 담은
바다 풍경화를 애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뒤에는 영국의 독특한 지리적,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섬나라인 영국은 유럽 대륙의
그 어느 나라보다도 바다가 주된 삶의 무대였다. 또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영국의 해상력은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올랐으며,
바다에 대한 국가적인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러한 관심은 대중들에게까지 번져, 자연스럽게 바다 풍경화의 부흥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일찍이 영국에는 네덜란드와 플랑드르의 17세기 거장들의 바다 풍경화가 소개되었고, 그들의 정확하고 세밀한 바다 표현,
범선의 묘사는 사람들의 찬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네덜란드 화가들의 범선 그림을 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풍경은 물론이고,
아마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것들까지 그림 속에 묘사되어 있다. 즉, 그들은 배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고, 배의 장비가
어떻게 준비되는지까지 알고 그림을 그린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18-19세기는 영국의 해상력이 크게 번영을 이룬 시기였다. 유럽의 각국은 자신들의 해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전쟁을 했고,
특히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영토 분쟁 전쟁이 모두 바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트라팔가 해전(Battle of Trafalgar)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가장 큰 해상 전투로서,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이 에스파냐와 연합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를 크게
대파한 전투였다. 이후 영국에 해상 독점권을 가져다준 이 전투의 승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 풍경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 주었고,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많은 그림이 제작되었다.
윌리엄 터너 [트라팔가 해전 후 회항하는 승리호] 1806년 캔버스에 유채, 67x100.3cm, 예일 영국미술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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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클락슨 스탠필드 [트라팔가 해전] 1805년
캔버스에 유채, 262x462cm,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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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은, 트라팔가 해전을 기념하여 당시 풍경화가로 가장 큰 명성을 얻고 있었던 두 작가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왼쪽의 그림은 터너가 30대 초반에 그린 [트라팔가 해전 후 회항하는 승리호(The Victory)]이고, 오른쪽은 바다 풍경화의 대가로
손꼽히는 윌리엄 클락슨 스탠필드(William Clarkson Stanfield, 1793-1867)의 [트라팔가 해전(The Battle of Trafalgar)]이다.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와 맞서 대승을 거둔 영국 함대의 모습을 담은 두 개의 그림은 구도상의 차이는 분명히 느껴지지만,
범선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바다 풍경이라는 구성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두 그림을 보면, 당시 두 작가 모두가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의 전통을 숙지하고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바다를 바라보는 두 화가의 시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된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표현하려 했던 터너
윌리엄 터너 [바람 부는 날] 1808년~1809년
캔버스에 유채, 91.5x 120.6cm, 맨체스터 대학교 테블리 하우스 컬렉션
ⓒ University of Manchester (The Tabley House Collection)
터너, 바다 풍경화에 빛과 색에 대한 고찰을 담다
윌리엄 터너 [타인머스] 1822년경
종이에 수채, 15.5x23cm, 블랙번 미술관
ⓒ Blackburn Museum and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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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클락슨 스탠필드 [텍셀 섬의 어귀] 1855년
캔버스에 유채, 베리 아트 갤러리
ⓒ Bury Art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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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터너 [바다 어귀에 정박한 증기선에 경고하는 폭죽과 푸른 빛] 1840년
캔버스에 유채, 56.8x76cm, 스텔링 & 프렌신 클라크 아트 인스티튜트
글: 김현경 | 전시기획자
파리 4대학과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박물관학을 전공했다. 현재 지엔씨미디어 전시학술을 담당하고 있으며,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특별전과 영국 근대 회화전을 기획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