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쇠라(Georges(-Pierre) Seurat, 1859~1891)는 파리의 안정적인 중류층 가정 출신으로,
드라마틱한 일화를 남긴 격정과 기행의 ‘예술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침착한 ‘과학자’ 같은 화가였다.
늘 단정한 정장 차림을 하고 다녔던 그는 이지적이고 과묵한 성격으로 충동에 휘말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가끔 여름을 노르망디나 브르타뉴의 해변에서 보낸 것을 빼면 그는 평생을 파리에서만 살았고,
생활도 규칙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른두 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많지 않은 작품을 남겼지만,
쇠라는 과학을 회화에 적용하여 근대의 일상을 고전적인 구조와 질서 속에 담아낸,
대체할 수 없이 독특한 스타일의 걸작을 남겼다.
그는 1875년에 조각가 쥐스탱 르키앙(Justin Lequien)의 미술 학교에 들어가면서 공식적인 미술 수업을 시작했고,
1878년에는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정식으로 입학하여 앙리 레만(Henri Lehmann)의 화실에 등록했다.
앙리 레만은 쇠라가 일찍이 관심을 가졌던 화가 앵그르의 제자였으나, 쇠라는 곧 레만의
교육에 흥미를 잃고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자극을 찾았다. 1879년 11월부터 1년간 병역의무를
수행한 그는 파리에 돌아와 작업실을 만들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찾기 위한 여정에 들어갔다.
고대 그리스 미술, 특히 구성과 비례에 관한 이론과 과거에서 당대에 이르는 대가들의
작품도 그에게 영향을 준 연구 대상이었지만, 그만의 양식을 만드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은
19세기에 발표된 선과 색채에 대한 과학적 이론들이었다. 그중에서 화학자 셰브뢸( Michel-Eugène Chevreul )의
[색채의 동시적 대조의 법칙에 관하여 De la loi du contraste simultané des couleurs ]
(1839)와 미학자 샤를르 블랑(Charles Blanc)의 책 [조형 예술의 문법 Grammaire des arts du dessin](1867),
미국인 물리학자 루드(Ogden Rood)가 1879년에 쓰고 1881년에 불어로 번역된
[현대 색채론 Modern Chromatics]은 쇠라 사고의 중심으로 남았다. 선과 색채가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색채는 주위 색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과 보색 대비 이론, 물감을 섞으면 색이 탁해지나 광선의
혼합은 명도를 높인다는 사실 등에 그는 특히 주목했다. 1881년 2월에는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분석하고
긴 메모를 남겼는데 여기에는 그가 시각적으로 혼합된 중간톤을 만들기 위해 보색의 쌍을 사용한 것을 유심히 본 내용이 담겨 있다.
색으로 여름빛을 그리다
1883년 여름, 쇠라는 최초의 대작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Bathers at Asnières]에 착수했다.
이는 살롱 회화용 거대한 화면(201×301cm)에 노동자로 보이는 인물들이 아스니에르의 센강가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아스니에르는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5km 떨어진 도시로, 이 작품의 원경에 보이는 대로 이미 쇠라
시대에 공장의 굴뚝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특징짓고 있었던 공업도시였다.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 1884, 캔버스에 유채
201×301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앉아 있는 누드] 1883, 종이에 콩테 크레용
31.7x24.7cm, 국립 미술관, 스코틀랜드
고전이 된 근대 도시의 정경
[아스니에르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과 짝을 이루는 대작(207×308cm)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에는아스니에르 맞은 편에 가까운 센강 안의 길다란 섬 그랑드 자트에 여름 소풍을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다양한 계급과 직업의 남녀노소 50여 명이 당시에 유행하던 옷을 차려 입고 소풍을 나왔다. 사람들은 산책을 하거나 배를 타거나 낚시를 하거나 그냥 앉아 남을 구경하고 있다. 나무가 지붕처럼 그늘을 만들고 왼쪽 위로 보이는 하늘에는 솜털 같은 구름이 떠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1886
캔버스에 유채, 207×308cm,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모델들] 1888
캔버스에 유채, 200×250cm, 반스 재단, 펜실베니아
근대 대중문화의 패러독스
쇠라 말년의 주요 작품 세 점은 모두 대중적인 오락을 주제로 한 것이다. 1888년 독립전에 출품한 [서커스 사이드쇼 Circus Sideshow]는 이런 주제로 그린 첫 번째 그림이자 쇠라의 분할주의를 밤 풍경에 적용한 최초의 작품이다. 아홉 개의 가스등이 켜진 무대에서 악사들이 서커스에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한 연주를 하고 있다. 화면 오른쪽에 무대 감독이 서 있고, 왼쪽에 악사들이 서 있다. 그림 하단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자가 음악을 시각화한 것처럼 리드미컬하다.
[서커스 사이드쇼] 1888
캔버스에 유채, 99.7 x 149.9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샤위], 1890년
캔버스에 유채, 169×139cm, 크뢸러-뮐러 박물관, 오테를로, 네덜란드
[서커스] 1891 캔버스에 유채, 186×153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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