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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그때 그시절
작성자
룰라
[작성일 : 2015-04-07 12:03:01 ]  
제 목
곡절 많았던 '양담배와의 전쟁'

곡절 많았던 '양담배와의 전쟁'
여러분은 피어 오르는 연기만 보고 양담밴지 국산담배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가. 또 풍기는 냄새만 맡고 그걸 판별할 수 있는가. 흔히 “양담배는 국산보다 하얀 연기가 조금 더 많이 난다”고 한다. 국산담배의 질이 형편없었을 때는 “양담배를 피우면 달짝지근한 냄새가 난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사실 어지간한 애연가라도 국산과 외국산담배를 냄새나 연기만으로 판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처럼 돼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까지 활동을 했던 전매청 감시과 단속반원들은 달랐다. 그들은 말 그대로 ‘족집게’였다. 10여 미터 떨어진 데서 냄새를 맡아 아는 건 약과. 창문을 닫은 차 안에서 양담배를 피워도 피어 오르는 연기를 보고 흡연자를 잡아내기도 했다. 한 단속반원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척 보면 안다”고 했다. 냄새와 연기도 판별의 한 요인이지만 그보다 몇 십 년 갈고 닦은 노하우, 즉 “육감으로 때려잡는다.”는 거였다. “눈빛과 작은 몸짓만 보면 양담배를 피우는지 아닌지 다 안다”는 얘기였다.
개비 수만큼 벌금? 눈감아준 경우도 많아

70년대 양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적이 있는 한 유명의사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썼다. 1972년 대학병원 인턴시절, “명동성당에서 있은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다 택시를 타고 돌아가던 길에 단속반에게 딱 걸렸다”는 것이다. 택시 안에서 회진 때 선물로 받은 양담배를 뜯어 친구와 한 개비씩 피워 물고 가는데 차가 을지로 3가 신호등에 걸려 정차한 순간 “누런 점퍼차림의 두 사내가 벌컥 문을 열고 다짜고짜 앞 뒤 좌석에 올라탔다”는 것이다.

사내들은 “담배를 든 두 인턴의 손목을 꽉 쥐고는” 택시운전사에게 “종로 4가로 갑시다.”고 짧게 말했다. 당시 종로 4가엔 전매청 별관이 있었고 그 4층에 바로 단속반 사무실이 있었다. 그런데 블로그에 당시 상황을 소개한 의사의 설명이 재미있다. “그때 단속반은 연기만 봐도 양담배를 피우는지 안다는 얘기가 있었다. ‘아차, 단속에 걸렸구나.’하고 깨달은 순간 나는 남은 18개비가 든 담배 갑을 누런 점퍼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택시 시트 밑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그리고 4층 단속반에 잡혀 올라갔다”


격동기 ‘삶의 애환’ 피워올린 ‘하얀연기’
1995. 08.09 [경향신문] 27면
담배를 시트에 꾸겨 넣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 사무실에 끌려가면 가지고 있던 담배 개비수대로 벌금을 물리기 때문이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한 개비당 벌금이 10800원. 당시 인턴 월급은 3만 원대로, 세금 떼고 나면 2만7000원 정도를 받았는데 “친구와 양담배 2대를 피운 대가로 한 달 봉급을 거의 다 털어 넣게 되는 꼴”이었다. 한 달 치 봉급에 해당하는 현금을 가지고 다닐 리 없었으니 결국 “함께 담배를 피운 친구를 인질로 잡혀 놓고 근처 다른 친구의 사무실로 달려가 돈을 꿔다 납부하고 풀려났다”는 것이다.
양담배 단속에 걸린 얘기는 제법 들었어도 단속반 사무실까지 끌려가 담배 개비 수만큼 벌금을 냈다는 증언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사실 그건 특이한 케이스고 현장에서 적당히 타협해 뒷돈을 내고 없던 일로 마무리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전매청 단속행위를 흠 잡자고 일부러 하는 얘기가 아니다. 이름깨나 난 단속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양담배단속이 어려운 건 항상 자신과의 싸움 때문”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양담배를 피우는 이는 대개 중산층 이상으로 적발되면 돈으로 흥정하려 하기 때문에 돈 유혹에 빠지지 않는 극기를 신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대부분은 밀수품근절이란 대의에 충실하지만 유혹에 빠져 돈을 받고 눈감아준 단속반이 없지 않았다는 얘기다.
뭇매 맞고 쳇바퀴 돌고.. 곡절 많았던 ‘양담배와의 전쟁’

양담배 단속 전매청 직원 뭇매 맞고 넷 사상
1973. 05.23 [동아일보] 7면
사실 양담배단속이라면 우리는 주로 길거리에서 양담배 피우는 사람을 적발하는 모습만 연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밀수품 담배의 주된 유통경로였던 미군 PX에서 물건을 빼내는 현장을 덮치고 공급 책과 중간 판매상을 차단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그 일은 “길거리 흡연자 단속과는 비교도 안 되게 위험한” 일이었다. 73년 5월에는 경기도 시흥에서 미군 기지촌 양담배 밀매단속을 나갔던 수원 전매청 직원 4명이 10여 명의 미군병사로부터 몽둥이세례를 받아 1명이 숨지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단속반에 따르면 양담배 공급 책과 알선 책, 중간상들이 담배를 빼내 보관하고 운반 판매하는 경로는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수준”이라는 것.
큼직한 아기인형 속에 양담배를 넣고 포대기를 씌워 운반하는가 하면 비닐봉지로 싼 양담배를 항아리에 넣고 그 위에 된장 고추장을 덮는 수법도 썼다. 또 “양담배를 전대처럼 배에 차고 한복을 입어 임산부처럼 위장한 다음, 단속을 할라치면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번에 5~10보루(50~100갑)를 운반해 갑당 2백 원까지 마진을 남기기 때문에 기지촌 영세민들은 “거의 죽기 살기로 양담배 밀매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정부로서야 정부 전매품목인 담배의 부정거래를 손 놓고 볼 수 없는 일이지만, 영세민들은 “그까짓 담배 좀 팔아 푼돈을 챙긴다고 그토록 그악스럽게 단속할 필요가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양담배를 피는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세금 안 낸 양담배를 피우는 게 불법인 줄은 알지만 국산담배 질이 워낙 떨어져 그걸 피우는 것 아니냐”고 우겼다. 이러니 정부와 밀매업자, 양담배 흡연자들 간에는 좁히려 해도 좁힐 수 없는 평행선이 그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정부는 거의 매년 한 두 번씩은 대대적인 양담배단속에 나섰다. 중간상과 애연가들은 그러면 잠깐 숨을 죽였다가 단속이 뜸해지면 다시 사고팔고 피우고 선물도 하는 쳇바퀴돌기를 거듭했다.
“국회의원이 적발됐다” 시끄러워진 정계

그러던 1984년. 정부의 양담배 단속에 현직 국회의원들이 적발된 데다 그 명단의 발표를 둘러싸고 정부와 정치권이 치열하게 맞붙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사안은 문교부에 대한 외부 감사결과가 2월 초 밖으로 알려지며 달궈지기 시작했다. 연말연시 대대적 감사를 받은 문교부에서 학생군사교육관과 총무과장이 ‘모종의 이유’로 사표를 냈는데 알고 보니 그 이유가 “사무실에 양담배를 두고 있다 적발됐다”는 것이었다. 그 해 총무처는 “공무원부터 국산품을 애용하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와 관련한 대규모 감사가 정부 각 기관에서 벌어졌고 우선 문교부에서 사표파동이 불거진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튿날 정가에서는 “사회정화위원회가 정관가와 사회단체, 대학 등을 총망라해 양담배 단속을 벌였고 민정당 H의원, 민한당 Y의원을 포함 상당수가 적발돼, 그 명단 공개를 검토 중”이라는 소문이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회정화위 한 관계자를 인용해 “사실 양담배를 피우거나 소지하고 있다 적발된 사람의 명단은 이미 작성해 놓았다. 하지만 그걸 공개할지 여부는 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말까지 보도했다


정화위 양담배 특별단속 지도층 등 407명 적발1984. 02.10 [경향신문] 11면
이 관계자는 “지도층에서 양담배를 피우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또 한 두 명도 아닌데 ‘재수 없게’ 적발된 사람만 신상을 밝힐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각에서는 이 기회에 외래품 선호사상을 뿌리 뽑기 위해 일벌백계 식으로 명단을 공개하자는 주장도 강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러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바로 집권 민정당이었다. 그럴 것이, 사회정화위라면 “대통령의 직접하명을 받아” 감찰, 사찰을 하는 기관인데 거기서 외래품 사용 감찰을 벌였다니…

양담배 적발 공직자 명단 “공개하자” “공개말자” 논란
1984. 02.08 [경향신문] 3면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대통령이 정관가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솎아내려고 우선 양담배 등 눈에 띄는 외래품 사용자 단속에 나서도록 한 것 아니겠는가. 당장 당직자회의에서 이 문제가 예민하게 논의됐다. 한 간부 방에 있는 “외제 TV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놓고 실 국장들이 진지한 의견교환을 했다. 그 뿐인가. 한 간부는 “외제 넥타이를 매고 출근했다가 들리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자 구내매점에서 부랴부랴 당 마크가 새겨진 넥타이를 사 바꿔 매고” 사무실에 들어와 입방아에 올랐다.

소속의원이 적발된 것으로 알려진 민한당도 뒤숭숭했다. 당직자들은 “양담배를 피우다 들키면 법에 따라 벌금만 내면 되지 더 이상 제재할 게 뭐 있느냐”면서도 “혹시 정치권 사정의 일환으로 이 일을 벌이는 건 아닌지” 찜찜한 모습이었다.

이런 가운데 사회정화위원회는 전격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양담배를 피우던 407명을 적발했다”며 직업별 숫자를 발표했다. 기왕에 알려진 대로 정치인 2명 외에 공직자(4) 의사(10) 언론인(9) 금융인(9) 연예인(7)에 기업인 상인도 366명이나 됐다. 사회정화위는 개인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공직자를 비롯한 ‘사회지도급 인사’는 소속 기관장에게 명단을 통보했다”며 “외제 선호의식이 사라질 때까지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에 대한 부정 외래품 단속을 계속 벌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사그라진 논쟁, 종국엔 담배시장 개방으로
이 발표가 있은 후 공무원 사회에 기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외제 손목시계나 넥타이를 국산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공무원 매점에 줄을 서기 시작한 것이다. 반대로 양담배는 물론 각종 외래품을 파는 남대문시장의 이른바 ‘도깨비 시장’은 사람들 발길이 끊겨 찬바람이 돌았다. 물론 어디서건 양담배를 찾기 힘들어졌고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런 식으로 진전되자 반발 또한 적잖았다. 신문들은 칼럼을 통해 “양담배 단속은 나무랄 게 없지만 벌금을 물리는 외에 명단을 공개한다거나 이름을 흘리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적시하고 나섰다. 일부 칼럼니스트는 “법의 어떤 조항에도 없는 명단공개를 들먹이는 것이 바로 불법이며 국민들을 겁주는 행위”라고 통박했다.
“양담배 한대 피워볼래?”
1988. 04.16 [동아일보] 15면
야당의원들도 국회에서 정부를 힐난했다. 재무위 의원들은 전매청장 상대 질의에서 “걸핏하면 명단공개를 들먹이는 ‘황야의 무법자’ 같은 단속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느냐” “우리 육법전서 어디에 명단공개 대목이 있느냐” “딱지를 떼는 정도면 되지 겁을 주고 명단공개나 들먹이는 게 사회정화냐”고 따져 물었다. 또 “정화를 빙자한 탈법과 월권을 오히려 사회정화위가 하고 있다”거나 “개인의 인권이 이렇게 침해된다면 이는 행정권을 빙자한 폭력행위”라고 규탄했다. 전매청장은 급기야 의원들 앞에서 사과하며 “양담배 명단 공개는 전혀 내 본의가 아니었다.”고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여러분은 그걸 무슨 뜻으로 풀이하는가. 양담배 단속을 빌미로 사회정화위원회가 정관가에 겁을 주려 한 것이고 거기 전매청은 본의 아니게 끼어들었다는 얘기는 아니었을까. 불법 외래품인 양담배를 단속할 수 있다는 법을 멋대로 확대 해석해 누군가를 길들이는 도구로 사용하다 끝내 저항에 부딪친 것은 아니었을까. 양담배를 둘러싼 이 시끌벅적한 논쟁의 와중에 미국 등은 담배시장의 개방을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그리고 2년 후. 정부는 결국 담배시장을 개방하고 양담배 흡연 단속을 포기했다.
글
민병욱  |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1976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 사회1부장, 정치부장, 부국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2009년 7월까지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들꽃 길 달빛에 젖어> <민초통신 3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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